프로라는 말은 그 분야에서는 아주 전문적인 정신과 자세로 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오늘날 전문적인 분야에서 월등한 분들이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TV프로그램 중에 “생활의 달인”에서는 자신이 일하는 그 분야에 최고의 달인으로 등장하는 분을 볼 때마다 나는 영적으로 프로인지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다.
프로의 반대는 아마추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비전문가인 아마추어가 아니라 포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적으로 전문적인 프로가 되지 않으면 사탄 마귀에게 포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목회자들은 과연 영적인 면에 그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프로인지 아니면 포로인지 자신을 뒤돌아봐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 7장에서 아이 성을 공격하기 전 자신들의 힘을 신뢰하여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철저하게 패배한 것이 보여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관해서 어느 정도 프로가 되었기 때문에 아이 성 정도라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거나 여쭙지 않고 쳐들어가면 백전백승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진 것이다.
전문적인 프로가 아니라 자신들이 신뢰하고 있는 것에 포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프로는 어떻게 해야만 프로가 되는 것일까?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임할 때 하나님 앞에 반드시 여쭙고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는 지시가 내려올 때 언행을 하는 존재가 영적으로 프로 정신을 갖는 것이 아닐까?
이런 존재를 지혜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하나님께 여쭈었다면 창세기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하는 행위가 바로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해야 되는 일을 먼저 하나님께 여쭙고 난 뒤에 실행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 9장에 아이 성을 공략하여 완벽한 승리를 한 후 또 하나의 실수가 나타난다. 기브온인들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 앞에 여쭙는 일을 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올무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단은 성도들에게 어떤 사건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 묻는 대신 자기 손으로 처리하기를 우는 사자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무장을 하고 다가오는 것보다도 자기를 낮추고 탄원자처럼 다가오는 것이 가장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차라리 쳐들어오는 사단이라면 방어라도 한다. 그러나 밑바닥에 자신을 낮추며 다가오는 마귀사단의 전략에는 그 어느 누구도 휘말리게 되어 있다.
사단을 혼비백산하게 도망쳐 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끊임없는 방비를 위해서 그의 계략을 쳐부수는 데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항상 무장해 있어야 한다. 무장한다는 의미는 신앙생활에 있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예수쟁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어설프게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전문가처럼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장로님처럼 인자하거나 권사님처럼 아주 기도를 잘하는 것일까? 아니면 극성맞게 전도를 하며 교회에 헌신봉사를 잘하는 집사님처럼 되는 것일까? 항상 단정하고 그 어느 것 하나 빈틈이 없는 가운데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 그리고 기타 모든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것일까? 헌금도 잘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신실한 청년처럼 술, 담배는 물론 세상의 오락에 심취하지 않고 정결을 지키는 것일까? 위와 같이 하는 것이 과연 예수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열거하지 않은 것 외에 얼마든지 고상하고 외적으로 예수를 믿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반면에 입으로만 예수를 전문적인 믿는 사람들이 죽고 난 뒤 심판을 받기 전에 천국의 물속에 들어가서 몸이 가라앉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입만 동동 떠올랐다는 유머가 있듯이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한답시고 자신의 속사정만 입에 거품을 물고 때를 쓰듯이 악을 쓰며 기도하는 이들을 볼 때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기도를 하고 난 뒤 하나님께서 하달하시는 음성마저 거부한 채 무엇이 바쁜지 줄행랑을 치는 교인들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쟁이 즉 신앙생활의 전문가인 프로라고 할 수 있을까? 기도를 장시간 하는 사람들일까? 교회의 모든 일에 도맡아 정신없이 해대는 사람들일까? 자신의 몸을 학대하면서까지 금식, 철야, 고행을 하는 것일까? 어떤 기준이 전문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필자도 궁금했었다.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하나님 앞에 여쭈어보고 난 뒤 하나님께서 지시한 내용대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전문가라고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앞에 일어나는 사건이나 말씀, 그리고 암시, 현상을 봤다면 항상 먼저 질문을 해야 한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는가? ‘사울’이란 이름의 뜻은 “질문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시사항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행동으로 옮긴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았다면 머리에 재를 부리고 옷을 찢고 회개했었더라면 그의 역사를 달라졌을 것이다.
여호수아보다 4세기 후의 사울 왕 시대에 있어서 기브온인이 죄와 비애의 원인이 된 일이 있었다. (삼하 21:1~) 이와 같이 보는 바에 따라 행(판단)함으로써의 실패, 기도하지 않음으로써의 실족하게 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고 쉬는 죄를 가장 악하게 본 사무엘 선지자의 말씀을 되씹어야 한다.
기브온인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속인 것은 물론 나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그 행하신 일을 듣고(9~10) 자기들의 멸망을 어떻게 해서라도 면하게 하려고(24)교묘하게 속인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구원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소위 자기 구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속인 것에 대해서는 응당 처벌을 받아야 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그들은 본래 신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방인으로써 어떻게 해서라도 여호와의 은혜에 참여하겠다는 열렬한 소원은 가상히 여길 만하다. 그렇다고 목적만 좋으면 수단을 아무래도 좋다는 말은 옳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여 구원을 요구해 온 그들은 동정할 수밖에 없는 측은한 백성이다. 하나님은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 열렬한 소원에 의해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영적 프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유치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우리 주변에서 항상 발견하게 된다.전문적인 영적 프로가 되려면 영적 본능을 주어진 하나님의 교통 속에서 적을 분별하고 그와 동맹을 맺는 일을 거부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의 주변에 환경과 손을 잡아버리는 일이다. 이것이 사단과 동맹을 맺는 것은 영적 승리를 잃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한 성실한 신뢰를 무너뜨리며, 신앙의 독립을 제한하고 영적한 감정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점을 80가지로 분류되어 있지만 프로와 포로와 차이점을 분류하지 않고 있다.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적인 프로가 되지 않으면 아마추어가 아니라 마귀사단에서 포로가 되는 것을 성경 여러 군데 사건이나 인물들에게 등장하고 있다. 얼마든지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면 나와 비교해야 할 것이다.
올해 어느 교회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주제아래 목표를 내세운 교회가 있다. 기본기가 되지 않아서 세운 목표가 아닐 것이다. 기본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리 공적이 많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초가 제대로 되지 않은 자는 프로가 될 수 없으며 아마추어 정도 밖에 실력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의 위기는 기본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자기 멋대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거나 자신들이 내세운 신학과 교리를 토대로 정통이란 굴레를 씌워 믿고 있다. 기브온인들과 동맹을 맺듯이 세상과 타협하고, 아이 성처럼 작은 일에도 아주 우습게 여기며, 하나님 앞에 여쭙거나 기도로 문의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주께서 하달하시려는 내용마저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신앙인들 가운데 승리한 분들도 있지만 전쟁에서 철저하게 얻어터진 패잔병처럼 몰골이 엉망진창인데도 다치지 않은 것처럼 상처를 무화과 잎으로 숨기고 교회에 나오고 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마귀사단에게 궁지에 몰려 쫓겨 다니거나 공격을 당해 부상이 심한데도 멀쩡한 것처럼 위장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언을 하거나 각종 은사를 한다며 전문가처럼 보이는데 그들이 얼마나 육적으로 탐심이 심한지 성경에 막달라 마리아(막 달라 말이야)보다 더 욕심을 부린다. 은사를 이용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갈취하는 아간보다 더한 인간쓰레기들이 영적으로 승리했다고 자랑하지만 처참하게 패배하여 거의 죽다시피 초죽음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호수아서는 아마추어를 만들기 위해서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한 것이 아니다. 아주 전문가로 만들기 위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한 것이라면 철저하게 영적 전문가 프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나안이란 낮아지고 낮아져야 되는 장소이며 요단은 낮아지고 낮아진 곳을 향하여 힘차게 흘러간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한국 민족 가슴 속에 하나님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하여 낮아지고 낮아져서 힘차게 흘러가야만 한다.
이에 따른 전문가는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하게 길들여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에 나오는 온유한 자의 복이다. 온유는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낮아지는 가운데 하나님의 방식에 의하여 길들어지지 않으면 온유의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프로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 길들어지자.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