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 셋째날 (2014년 4월 16일)
본문 : 눅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제목 : 겟세마네의 위대한 기도
ㅇ 잡히시기 전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라고 부탁하시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괴로워하신 것은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보다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대신 받아야할 하나님의 진노와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ㅇ 주님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간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주는 신성(神性)을 가졌지만, 동시에 인성(人性)도 가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도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너무도 쓴 잔이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십자가는 택한 백성들의 모든 죄를 한 몸에 대신 지고 그들이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대신 치러내야 하는, 무한 고통의 형틀이 아닙니까?
ㅇ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는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 그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ㅇ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토록 간절하게 기도부탁을 했지만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주님과 제자들 사이의 거리는 ‘돌 던질 만큼’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 제자들의 귀에 주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려왔을 텐데도, 그들은 무심하게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잠들었어도, 주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ㅇ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라 하는 지명은 ‘감람(올리브) 기름을 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그 부근에 많이 재배되고 있던 감람나무 열매의 기름을 짜는 착유기가 그곳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지명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마치 기름을 짜내듯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ㅇ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가 위대한 것은 밤새도록,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자기 뜻을 부인하고 아버지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였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기도란, 기어이 내 뜻을 관철해 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자신과의 필사적인 싸움입니다.
ㅇ 밤새 기도해도 “내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면 의미가 없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해도 “내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라는 기도라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 그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라는 것임에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도는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평택예향교회 박태용 목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평택예향교회>